그 전에도 가지고 있던 생각의 파편들이
세월호 사건을 겪으며 많이 진행되었다.
결론은 못 내렸다. 화두만 몇 가지 정리되고 있다.
세상을 바꾸려면 힘이 있어야 하고,
뜻대로 다른 사람을 움직이려면 신뢰를 얻어야 한다.
불합리한 일이라도 어느정도 참고 견디며
최선을 다하며 이해하고 받아들이려 노력해야
주류 세계로 편입되고 영향력을 가지게 된다.
그리고 그 영향력을 키워서 세상을 바꾼다.
그 과정 속에서 초심을 잊지 않으려 부단히 노력한다.
이것이 젊은 혈기 진보로 시작해서
어느덧 안정된 기성세대가 된 이들의
공통된 행보인 것 같다.
운동권에서 시작해 중견 정치인이 된 이들도 그렇고
아주 미약하게는 나 자신도 그러하다.
그런데 정말 이 길이 맞는가.
초심을 잃지 않는 것이 가능한가.
주류로 편입되며, 가치관의 기준점이 바뀌진 않을까.
급진적인 생각이 날 것 그대로 남아야 하는데,
그저 이해력과 타협, 포기만 늘어난 것은 아닐까.
안정적이라는 것은 지킬 것이 늘어났다는 이야기인데,
울타리를 지키다 세상을 바꿀 용기가 소멸되는걸까.
더 현명한 다른 길이 있지 않을까.
어린 이들에게 조언을 하면서도 망설이게 된다.
택해 걷고 있는 길이 옳은 지 모르겠지만
최선을 다할 뿐이라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
길을 따라 걸으라 하는 논조가 되는 것 같아.
그리고 마음 한켠에- 교과서적으로 제시할 수 있는 세상을 바꾸는 방법은 우리의 한계이니, 세상의 찌든 떼가 덜 묻은 그들이, 우리에게 더 좋은 다른 길을 제시해주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때마다.
젊은 이들이 세상을 바꾸라 하는 무책임한 어른들처럼, 사실은 힘이 있는 어른들이 바꾸어야 하는 게 맞는데, 힘도 돈도 없는 학생들에게 너희들이 미래다 미안하다 부탁한다 하며 짐만 지우는, 기성세대의 모순적인 언행이- 내 안에도 있다는 게 느껴져서, 많은 말을 삼키고, 더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개인의 힘으로 풀기에 벅찬 문제를 짠! 하고 풀어주는 슈퍼히어로는 없다. 어린 친구들에게 너희가 영웅이 되어주렴(=우리를 위해 무언가를 해주렴 =세상을 위해 희생하렴) 하며 책임을 전가하지 않아야 한다.
고민 끝에 찾은, 현실적인 제약을 감안한- 최선이라는 게 결국 주변을 조금씩이나마 바꾸고, 힘을 키워 조금 더 세상이 밝아지도록 노력하는 것 뿐이다.
여기서 또 드는 화두는, 최선을 다해 살아오며 시간이 흐른 뒤의 이상향이라는 것이 결국은 세월과 세상과 타협하며 만들어진, 변질된 이상향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전두환 정권을 몰아낸 세대가 지금은 한나라당 지지자가 되어서 '젊은 것들은 모르는 이유가 있다.' 라고 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 세대는 세상에서 가장 존경하는 부모님 세대이고, 그 분들의 이야기는 연륜에서 묻어나오는 설득력이 분명히 존재하며, 야들야들해진 뇌는 보수로 치우친 그 분들의 이야기 속에 합리성을 찾아버린다.
이 참혹한 사건들을 보며 눈물 흘린 세대가 주변을 개혁하려 작은 움직임들을 계속 노력한다면, 십여년 뒤 세상은 바뀔까. 아니면 지금의 오륙십대처럼, 진보의 서투름을 한숨쉬고 보수의 노련함을 옹호하게 될 것인가.
답은 시간이 지나야 나겠지만, 내 아이가 살아갈 미래가 지금같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그러기 위해- 젊은 이들에게 책임과 의무를 전가하지 않고 기성세대로서 초심을 잊지 않고 작은 범위라도 주변을 정화해나가야 겠다. 세상에 적응하며 너무 많은 이해를 하다보면 초심을 백프로 유지하기 어려워질테지만, 가치관의 세부적인 내용은 바뀌더라도 방향성은 유지할 것이다.
그런데, 꼭 주류 사회에 편입되어야만 세상을 바꿀 수 있는걸까. 다른 길은 없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