람이/보물과 만나다

람이 859일 - 긁는 밤. 물사마귀.

LEEHK 2013. 6. 17. 08:30

 

 

 아이는 요즘 물사마귀가 생겼다.

 어린이집에서 옮아온 것 같은데, 팔 오금과 다리 오금에 조금씩 번져가고 있다.

 소아과 가서 처치하기로 했는데, 마침 폐렴이어서ㅜㅜ

 일단 그거 부터 치료하고 나서 보자며 시기를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본디 자주 긁는 아이가 여름이 가까워지며 덜 긁고는 있는데,

 그래도 긁지 않을 수는 없는지, 특히 졸릴 때 자주 긁는다.

 자주 긁어주고 만져주며 재우는데, 특히 내가 몸이 안 좋을 때는

 가끔 속에서 불 같은 감정이 치솟아 올라 현기증이 아찔할 때가 있다.

 

 긁어, 물사마귀가 터지면, 그 안의 바이러스 덩어리가

 다시 긁어 피 나는 상처에 들어가 또 번져가겠지.

 의사 선생님께서, 아토피 애들은 물사마귀가 잘 퍼진다고 하셨다.

 그 생각이 갑갑함과 답답함과 속상함에 버무려져, 간혹-

 내가 엄마가 되어도 되는 인종인가 까지 극으로 치닫는다.

 

 긁지 않고 비벼서 만져주는데, 아이가 참기 어려운지 내 손을

 밀어내며 계속 긁어대면- 아주 가끔, 반 년에 한 번 정도,

 마치 싸우는 연인 사이에서나 할 법한 말을 내 뱉는다.

 

 "람아, 그렇게 긁고 싶어? 엄마, 너 포기할까? 그냥 긁을래?"

 

 28개월 아이에게 이런 말이나 하고 있는 내가 너무 한심해서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며 돌아 누워 천장을 바라본다.

 삼사십분째 옆을 보며 누워있던 몸이 삐끄덕댄다.

 

 

 그런데 문득, 긁는 소리가 멈추더니 다른 종류의 마찰음이 난다.

 돌아보니, 아이가 나를 바라보며 자기 손으로 긁던 부위를 쓸어내리고 있다.

 까만 눈동자에 담긴 아이의 마음을 감히 짐작할 수 없지만,

 순식간에 가슴에 울음이 차오르며 입은 웃으며 아이의 정수리에 뽀뽀한다.

 

 "그래, 긁지 말고 이렇게 비벼, 아니면 탁 탁 때려~"

 

 찬물수건을 해와서 긁는 부위에 마사지해주며 뽀뽀해주니

 한밤중에 본인도 피곤했는지 다시 스르르 잠든다.

 잠든 아이를 바라볼 때, 기특함, 짠함, 미안함, 사랑스러움,

 온갖 감정이 폭풍처럼 가슴을 치고 지나간다.

 

 '크림 발라줘~' 라는 말을 스스로 하며 크림을 가져오기도 하고,

 '엄마, 등 긁어줘~' 라는 말도 가끔 한다.

 어휘가 늘어나서, 마음도 성장한 것이라기보다-

 마음이 성장하며, 어휘가 늘어난 것이겠지.

 이 아이는 내 말을 어디까지 알아듣고,

 내 마음을 어디까지 짐작하는 것일까.

 

 

 말도 잘 듣고, 착한 아이다.

 엄마를 사랑한다고, 좋아한다고 내 치맛자락을 부여잡고 동동거리며 웃는다.

 아주 아기 때부터 사랑한다며 온 몸에 뽀뽀를 많이 해 주었는데,

 요즘은 어른의 팔, 다리, 가슴, 옷 등에 먼저 와서 뽀뽀해준다.

 사랑을 표현하고, 잘 웃는 내 아이.

 아이가 힘든 밤은, 내가 함께 힘들어 줄 수 있어 다행이다.

 마음의 여유를 갖고, 따뜻하게 안아주며 보듬어주어야지.

 

 나는 엄마로서의 자질과 재능과 체력도 없다는 걸 정말 뼈저리게 느끼는 순간이 많다.

 내가 엄마처럼 보인다면, 그것은 아이가 나를 사랑으로 감화하여 엄마로 만들어 주었기 때문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