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풀던 수학 문제를 덮어놓고 엄마 쪽으로 의자를 돌렸다.
"그건 왜냐면... 결혼한 여자의 얼굴에는 빛이 없거든."
엄마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바라보았다. 눈빛으로 어떤 충격 같은 것이 지나가는 것이 느껴졌다. 내게 그건 사실이었다. 내가 친구들의 엄마를 보면서 느낀 거였는데, 안정감이라든가 노련함이라든가 하는 표정은 있었지만 뭐랄가. 반짝반짝하는 빛 같은 것은 본 적이 없었다. 이렇게밖에 표현할 수 없는 게 좀 그렇긴 하지만 내 친구 엄마들의 얼굴에는 늘 '세상에 새로운 게 뭐가 있겠어. 나쁜 일이나 없으면 됐지.' 하는 어떤 체념 같은 것이 딱딱하게 어려있었다. 엄마는 내 말에 잠깐 생각하는 표정이 되었다.
"엄마, 나 만나러 뉴질랜드 왔을 때, 그때 엄마는 지금보다 솔직히 더 날씬하고 예뻤는데, 그런데 행복해 보이지는 않았어... 그런데 지금 엄마는 살도 좀 더 찌고 나이도 좀 들었는데, 훨씬 더... 뭐랄까, 빛나 보여."
"그거는 위녕, 결혼을 해서가 아니라 자기 자신이 얼마나 자신으로 살아가는가의 문제야. 그러니까 결혼을 하고 안 하고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얼마나 지키고 사랑하고 존중하는가의 문제라니까."
"알아. 그런데 그게 없더라니까, 거의 본 적이 없어. 그럴 때 사람들은 생각하는 게 아닐까, 저 여자는 아줌마구나."
- 공지영 장편소설 '즐거운 나의 집' 중에서 -
...
젊기 때문에 빛나고 있는 지금의 형태와는 다르겠지만, 나이들어서도 결혼 유무와 관계없이 계속 빛나는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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