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영상 & 공연

[★★★★] 영화 '사과' (스포일러 주의)

LEEHK 2008. 10. 22. 02:47


 지금이 아니라면 크게 공감하기 어려웠을 것 같다.

 

 나는 지금 오래 사귄 연인과 결혼을 앞두고 있다.
 행복에 대한 기대와 설레임을 느끼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낯선 세계에 대한 작은 두려움도 있다.

 

 

 현정(문소리)은 7년 사귄 민석(이선균)에게 "내가 자꾸 없어지는 것 같아." 라며 일방적인 이별 통보를 받는다.
 첫사랑에 대한 미련을 제대로 정리하지 못한 채, 서투르게 다가오는 상훈(김태우)에게 마음을 연다.


 그렇게 연애하다 결혼하여 안정을 찾는 듯 보이지만, 서로가 '다름'으로 인한 갈등이 시작된다.

 현정은 상훈을 친정 식구와 화합하는 가족으로 받아들였지만, 상훈 개인의 세계는 존중하지 않았다.

 서울에서 구미로 내려가는 과정에서 상훈이 업무상 했던 거짓말이 들통나면서 갈등은 심화된다.

 상훈의 직장 비전에 대한 견해 차이로 시작된 말다툼 끝에 임신한 현정은 혼자 서울로 돌아오고 원거리 부부가 된다.

 

 직장에 복직한 현정에게 민석(싸이코패스)이 다가온다. 현정과 민석은 연애시절처럼 데이트를 시작한다.

 현정은 직장을 그만두고 돌아온 상훈에게 이혼하고 싶다고 이야기하고, 상훈은 대화 없이 자리를 피한다.

 

 민석과의 의미없는 만남에 환멸을 느낀 현정은 민석에게 이별을 고하고, 그 동안 민석과 만났음을 상훈에게 고백한다.

 현정이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상훈(멍청이)은 이혼서류를 들고 집으로 들어온다.

 침대에서 자고 있던 현정은 상훈을 끌어당겨 옆에 눕히고는 "자자.. 미안해.. 미안해.." 라며 화해를 청한다.

 

 

 

 현정은 자신이 보고 싶은 부분만 보며, 상훈은 자신이 보여주고 싶은 부분만 보여준다.

 상대를 배려하고 있다는 구실을 내세우며 자신의 생각대로 타인을 판단하고

 내 인생의 중요한 결정은 상대에게도 중요하다는 사실을 간과한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타인의 방황과 실패를 감상하는 것은, 나는 그들과 같은 문제를 겪기 싫다는 의지가 깃들어 있을 때만 가능하다.

 가정의 평화란 어느 한 쪽만 지속적으로 양보하고 희생해서는 이루어질 수 없는 부분이다.

 겉보기에 평화롭고 아름답겠지만, 속으로는 곪아 썩어질 수도 있다.

 

 많은 대화, 많은 대화가 그 무엇보다 중요하겠다.

 타인의 입장에서 생각하기. 어느 주제에서도 어울리는 보편의 진리이다.

 

 

 

 영화 주제와 큰 줄거리 이외에도, 굉장히 디테일한 구성이 좋았다.

 사윗감을 처음으로 만날 때 친정아버지의 표정이나 태도, 평소에는 너라고 부르다가 불리할 때만 언니를 외치는 여동생,

 첫데이트의 뻘쭘함과 훈련받는 군장병들의 적절한 등장, 귤 좀 먹었다고 임신이냐고 난리인 시댁, 봉건적인 시골제사풍경,

 유머와 진지함을 적절하게 배합한 편집이 마음에 들었다.

 

 감독이 누구인가 확인해 보았더니, (참 잘 만든 영화인)여고괴담 두번째 이야기 때 조감독이었던 강이관씨였다.

 직접 각본도 쓰고 연출도 맡은 데뷔작이 4년 만에 개봉했으니 얼마나 마음 고생이 심했을까...

 마치 여자가 쓴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섬세한 감정 표현과 살면서 항상 있을 수 있는 에피소드들의 표현이 훌륭했다.

 

 개인적으로는, 이성끼리 보기보다, 연애 경험이 있는 동성 친구와 함께 보는 것을 권한다.

 

 미디어다음에서 기사를 읽다가, 오늘 반드시 이 영화를 보고야 말겠다는 충동이 솟구쳤다.

 혼자라도 보러 갈 생각이었는데, 9시반 늦은 시간임에도 흔쾌히 함께 가 준 문경이가 있어서 더욱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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