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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박정대-마두금 켜는 밤.

LEEHK 2007. 4. 5. 00:28


馬頭琴 켜는 밤

박 정 대


 밤이 깊었다
 대초원의 촛불인 모닥불이 켜졌다

 몽골의 악사는 악기를 껴안고 말을 타듯 연주를 시작한다
 장대한 기골의 악사가 연주하는 섬세한 음률, 장대함과 섬세함 사이에서 울려나오는 아름다운 음악 소리, 모닥불 저 너머로 전생의 기억들이 바람처럼 달려가고, 연애는 말발굽처럼 아프게 온다

 내 生의 첫 휴가를 나는 몽골로 왔다 폭죽처럼 화안하게 별빛을 매달고 있는 하늘
 전생에서부터 나를 따라오던 시간이 지금 여기에 와서 멈추어 있다

 풀잎의 바다 바람이 불 때마다 풀결이 인다 풀잎들의 숨결이 음악처럼 번진다
 고요가 고요를 불러 또 다른 음악을 연주하는 이곳에서 나는 비로소 내 그토록 오래 꿈꾸었던 사랑에 복무할 수 있다

 대청산 자락 너머 시라무런 초원에 밤이 찾아왔다 한 무리의 隊商들처럼
 어둠은 검푸른 초원의 말뚝 위에 고요의 별빛을 매어두고는 끝없이 이어지던 대낮의 백양나무 가로수와 구절초와 민들레의 시간을 밤의 마구간에 감춘다 은밀히 감추어지는 生들

 나도 한 때는 武川을 꿈꾸지 않았던가 오랜 해방구인 우추안
 고단한 꿈의 게릴라들을 이끌고 이 地上을 넘어가서는 은밀히 쉬어가던 내 영혼의 비트 우추안

 몽골 초원에 밤이 찾아와 내 걸어가는 길들이란 길들 모조리 몽골리안 루트가 되는 시간
 꿈은 바람에 젖어 펄럭이고 펄럭이는 꿈의 갈피마다에 지상의 음유시인들은 그들의 고독한 노래를 악보로 적어 넣는다

 밤이 깊었다
 대초원의 촛불인 모닥불이 켜졌다

 밤은 깊을 대로 깊어 몽골의 밤하늘엔 별이 한없이 빛나는데 그리운것들은 모두 어둠에 묻혀버렸는데 모닥불 너머 음악 소리가 가져다주던 그 아득한 옛날
 아, 그 아득한 옛날에도 난 누군가를 사랑했던 걸까 그 어떤 음악을 연주했던 걸까

 그러나 지금은 두꺼운 밤의 가죽부대에 흠집 같은 별들이 돋는 시간
 地上의 서러운 풀밭 위를 오래도록 헤매던 상처들도 이제는 돌아와 눕는 밤
 파오의 천정 너머론 맑고 푸른 밤이 시냇물처럼 흘러와 걸리는데
아 갈증처럼 여전히 멀리서 빛나는 사랑이여, 이곳에 와서도 너를 향해 목마른 내 숨결은 밤새 고요히 마두금을 켠다

 몇 개의 전구 같은 추억을 별빛처럼 밝혀놓고 홀로 마두금을 켜는 밤
 밤새 내 마음이 말발굽처럼 달려가 아침이면 연애처럼 사라질 아득한 몽골리안 루트

 

 

(馬頭琴-악기의 끝을 말머리 모양으로 만든, 두 개의 현을 가진 몽골의 전통 현악기)

(제 14회 김달진문학상 시부문 수상작)
  

 

 

++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