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그렇지만 문제는 먹는 거다.
잘 먹으면 그게 제일 감사하다.
초등학교 입학을 위해 아래 서류들을 몇 달 전부터 준비했다.
1) 식이제한 항목이 표기된 식품 알레르기 진단서,
2) 우유 경구유발검사 기록지 사본,
3) 매년 버전업하는 자체 제작 아이 알레르기 설명서,
4) 성남시 어린이 급식지원센터의 식품알레르기의 이해 일부 발췌본.
담임선생님용, 영양사 선생님용, 보건실 선생님용.
총 세 세트를 엮어 파일로 정리해 각각 라벨지를 붙였다.
아이들 재우고 새벽 세 시까지 작업하며 묘하게 낙관적인 기분이 들었다.
큰애가 태어나, 남다른 특성을 확인하고,
남다름을 배려하기보다 남다르면 숨도록 유도하는 한국 사회에서.
이 아이를 제도권 교육 속에 잘 섞여 들어가게 키울 수 있을까
숨막히게 두려워했던 시기가 있었다.
좋은 어린이집과 좋은 선생님들께서 잘 보살펴주신 6년 동안,
아이는 평균적으로 1년에 1~2번 정도 두드러기 사고가 발생했다.
이를 바꿔 말하면 364.5/365.25 = 99.79%의 날은 무탈했다는 이야기다.
1% 미만의 고생 보다는 99%가 넘는 즐거운 기억들이
아이의 머리를 가득 채워 넘쳐, 부모의 사고 또한 유연해질 수 있었다.
더 뛰어나길, 돋보이기를 바라지 않고
그저 남들과 다르지 않기를, 사람들 사이, 그 가운데에서 편안하길,
다른 친구들과 다르다는 걸 알아도, 원래 사람은 다 다르다며
잠시 속상해도 대수롭지 않게 털어버리는 아이로 자라길 바라며
실패해도 괜찮아, 틀려도 괜찮아, 망가져도 괜찮아,
못먹어도 괜찮아, 그것보더 더 좋은 것이 다가올 수도 있단다.
반복적으로 이야기해준대로, 잘 자라고 있는 아이를
부모로서 믿기에, 조금 더 마음이 편안했다.
존버의 시대. 도대체 나는 왜?
주식도 안하고 코인도 안하고 갭투자도 안하고 이직도 안하는가
언놈이 내 모험 기력과 투자 기력을 다 앗아갔나 생각해보면,
답은 자식이었다.
미래 보장도 없고 변동성도 너무 강하고
제어할 수 없는 환경적 요인이 자꾸 랜덤하게 뛰어나오는
존재 자체로 이미 내 평화와 생존에 엄청난 위협을 가하는 주제에,
몸과 마음을 다해 보살펴야 하는 연약한 존재가 드디어 초딩이가 되셨다.
진짜 나 고생했다. 앞으로도 고생해라. 존버해라.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