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상념의 문서화

모두 다 가질 수는 없다. 쓸데없는 고민은 없다.

LEEHK 2011. 12. 15. 00:48

고민을 하고 있다고 고백할 때, 대부분의 연상 사람들이 하는 말은 "왜 미리 고민해 쓸데없이." 라는 것이다. 나도 자주 하는 조언이기도 하지만, 사실 쓸데없는 고민은 없다.

아이가 있다는 것은 엄청난 일이다. 인생은 부모일 때와 부모가 아닐 때로 나뉜다. 그 전에는 개별적인 고민이 연타로 터져나왔다면, 지금은 모든 고민이 하나의 주제로 연결된다. 그것도 아주 분명하게.

행복한 삶을 만들고 지키는 것이 엄마가 된 뒤로 더욱 힘들어졌다. 그 전에는 나만 잘 챙기면 되었는데 이제는 나 이외에 신경을 쏟을 일이 더 많아졌다. 내 감정을 좌우하는 것이 내 자신이 아니라 나 이외의 다른 존재인 경우가 더 많다.

돈, 가족, 시간, 건강, 이화경이라는 사회인. 다 가지기 어려운 요소다. 하지만 하나라도 없다면 행복하기 어렵다. 아이가 생긴 이후로 하는 모든 고민은 저 요소들의 가중치 조절의 문제이다. 어찌하면 현명하게 저들을 모두 쥐어낼 수 있을지에 대한 생각의 답이란 결국 가중치에 따라 우선 순위가 낮은 특정 요소들의 역치값을 낮추는 것이다. 전에는 연봉 1억이 목표였지만 지금은 그보다 낮은 금액일지라도 조금 더 여유있는 삶을 살 수 있다면 과녁을 조금 내릴 수 있겠다고 생각하게 된 것이 그 일례다.

덕배를 낳고 람이가 아팠고, 이탈리아를 기대했으나 네덜란드에 내린 나는 육아휴직을 연장해서 15개월 간 '사회인 이화경'을 버리고 '람이 엄마'로 살고 있다. 여유 시간이 생겨도 친구 누구에게 연락해야 할 지 머리가 대략 멍해지고, 일주일에 한 두 번 간신히 외출하며 하루종일 집에만 있다. 그렇다고 혼자 육아를 하는 건 아니다. 다 키운 딸년 애 낳고 힘들다고 친정에 들어와 빈대 붙어 살고 있는데, 이제 자유로워야 할 친정어머니의 노동력을 자꾸만 요구하고 옭아매는 족쇄가 되어있다. 난 언제나 부모님의 자랑스러운 딸이었는데, 지금은 부모님의 생기를 빼앗아가려고 호시탐탐 노리는 기생 인간이다. 이 사실이 때로는 부끄럽고 치사하고 답답하고 서럽다. 받아주시고 배풀어주심에 감사하지만, "왜 울 엄마는 나에게 더 해주지 않을까? 흥 가출해서 엄마를 후회하게 해줄테다!!" 라고 중얼거리는 치기어린 중딩에서 하나도 성장하지 않았음을 깨닫고는 화가 나기도 한다.

둘째. 모든 한 아이 가정의 가장 큰 고민일 것이다. 남동생이 세상에서 가장 친한 친구인 나로서도 항상 둘은 낳아야 한다고 생각했었으니까. 하지만 막상 해 본 육아의 세상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웃으며 달려오는 예쁜 아가를 갖기 위해서는 포기해야 하는 것이 너무나 많다. 람이 엄마로만 사는 이 삶이 행복하지만, 너무나도 쉽지 않기에 한숨이 나온다. 부모가 모두 일하며 아이를 키우려면, 조부모의 희생을 발판으로 삼던가 남의 손에 아이를 맡기고 많은 부분을 체념해야 한다. 람이의 경우 남의 손에 맡기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민감 덩어리라 조부모의 희생을 빌어 키우는 수 밖에 없는데, 둘째라고 다를쏘냐. 그렇다고 부부 둘 중 하나가 사회생활을 접는 것은 더욱 어렵다. 나는 육아 살림 체질이 아니다. 정말 이러다 죽을지도 모른다는 말은 몇 달 전까지 진심이었다. 그렇다고 신랑을 전업주부로 삼기에는 신랑의 커리어와 연봉이 너무 아깝다. 내 어깨에 경제력의 모든 짐을 질 자신도 없다. 이런 상황에서 조부모의 희생을 다시금 요청하며 둘째를 낳는 것은 정말 무책임한 행동이다. 그러므로 둘째는 없다. 이것이 신랑과의 긴 토론의 매번 같은 결론인데, 그래도 매번 같은 토론을 하는 걸 보면, 람이가 힘들어도 이쁘긴 정말 이쁜 모양이다. 잠든 얼굴을 바라보면 이런 이쁜 게 하나 더 있음 밥 안 먹어도 배부르겠다 싶으니까.

사실 이 모든 이야기는 다 지금 해봤자 부질없는 일이다. 람이는 내년까지 몸이 확 좋아져서 어린이집에 적응도 잘 해야 하며, 나는 복직해서 워킹맘의 리듬을 잡아야 하고, 신랑도 점점 부하가 심해지는 업무와 가정의 균형을 찾아야 한다. 다른 고민들은 그 다음 단계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황금같은 밤 시간에 이런 글을 쓰고 있는 것은 오늘 친정엄마에게 무리한 요청을 했다가 거절당한 서운함, 내 자신에 대한 한심함, 자는 람이의 귀여운 손바닥, 람이를 보듬고 자는 신랑에 대한 감사함, 그리고 람이 엄마만이 존재하는 이 시간들에 대한 행복과 갑갑함 때문이다. '딸은 도둑년이라 특히나 나 같은 딸은 낳고 싶지 않은데... 신랑 같은 딸이면 또 괜찮겠다. 이 유전자 조합으로 아이가 하나 더 나오면 어떤 아이가 나올까.' 그러다가도 '둘째도 아토피면?? 이 짓거리를 또 하라고?? 난 못해. 회사다닐거야.' 혼잣말을 중얼거리는 생각이 깊은 밤이다.

언제나 명심해야 할 것은 결론은 결국 나를 위해 내리는 것이라는 것이다. 아이를 위해 나를 희생해서 내리는 결정은 없다. 아이를 보살피는 일을 포기할 자신도, 남의 손에 아이를 맡겨 차도가 좋지 않은 모습을 볼 자신도 없으니 휴직을 한 것이다. 어떤 결정을 내리더라도 모든 가능성을 다 따져보고 내가 욕심내는, 더 갖고싶은 방향으로 키를 몰아갈 것이다. 남을 위해 사는 것이 행복하다면, 그 삶은 희생이 아니라 당당한 나의 결정이 것이다. 물론, 나는 이기적인 존재라 아직 나를 위해 사는 시간이 제일 행복하다. 가족도 중요하지만 내가 잘 버텨야 한다. 내가 행복하기 위해 나를 중심으로 고민할 것이다.

이 모든 것을 글로 토해냈으니 이제 잠을 청해야 겠다. 그래봤자 람이가 한 두 시간 안에 깨서 울겠지만, 쪽잠이라도 자야 빡센 내일을 또 버티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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