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달 전 부터 몇 주 전까지 한동안 피부 상태가 최악이었다. 뾰루찌가 자잘하게 빼곡히 올라오고 양 볼이 알러지처럼 울긋불긋했다. 평소에 쓰지도 않던 필링제도 한 번 써보고 로션 크림도 더 꼼꼼히 발랐으나 피부 상태는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 피부 좋다는 말 많이 듣고 살았었는데, 이렇게 피부가 안 좋아진 것은 처음이었다. 어떤 요인이 바뀌었나 곰곰히 생각해보니 최근 반 년간 스킨에센스로션크림을 너무 순서대로 잘 바르고 살았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존슨즈 베이비 로션 노란색만 쓰던 주제에, 최근들어 비싼 화장품을 기초부터 꼼꼼히 종류별로 썬크림까지 챙겨 바르기 시작했다.
화장품이 일종의 '독' 이라는 이야기가 기억 나면서, 순서대로 여러개 덧바르던 것을 줄이게 되었다. 스킨과 존슨즈 베이비 로션 노란색으로 돌아왔다. 가끔 내키면 아이크림도 바르고, 일반 크림도 바르지만 여러 종류를 겹쳐 사용하지 않는다.
며칠 전, 술을 잔뜩 마시고 필름이 끊기고 -_- 새벽 내내 다 토하고 다음날 저녁 5시까지 흐물거리다가 일어나 샤워를 했다. 비실비실 거울을 보다가 문득 양 볼이 뽀송해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화장품을 줄여서 피부가 좋아진 것인지, 아니면 속을 싹-_- 비워서 몸 속의 노폐물이 다 빠져나가서 피부가 좋아진 것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참으로 웃기고 기뻤다.
대학교 2학년 생일, 한 학번 어린 (나이는 동갑인) 남자 후배가 선물해준 책이다. '화장품은 케미컬(화학물질)이기 때문에, 바르면 바를 수록 피부에 안 좋다. 비싼 것을 찾을 것이 아니라 되도록 첨가물이 적은 화장품을 최소한으로 사용해라' 라는 주제의 내용이다. 이 책을 읽은 이후로 화장품을 되도록 안 쓰며 살고 있었는데, 피부 노화가 시작되는 나이라는 부담감에 어느새 다시 화장품에 빠져들고 있었나보다. 최근 화장품의 유해성을 밝히는 책이 속속들이 나오고, 이슈화 되고 있다. 어느 것이 좋다 어느 것이 나쁘다 확신은 할 수 없겠지만, 이번 피부 트러블 사건으로 어떤 방향이 나한테 맞는지 대충 감을 잡을 수 있었다. 나는 화장품을 많이 바르면 피부가 놀라는 타입인가보다. 적당히 조심조심 조금씩만 발라야겠다.
집에 가서 확인해보려고, 기사에 난 화장품 속 유해물질 성분표를 저장했다. '%파라벤'은 회사 책상 위 핸드크림에도 당연히 포함되어 있었다. 집에 있는 화장품들에도 잔뜩 포함되어 있겠지? 하지만 저 방부제 제품들이 없다면 화장품이 상해서 못 쓸테니, 현대의 대량생산체제에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인 것 같다. 재벌이라면 방부제 없는 화장품을 수시로 공급받아 깔끔하게 살겠지만, 일반인인 나는 방부제 포함된 화장품을 조금씩 최소한으로 사용하는 것만이 유일한 선택권일 것이다.
그래도 또 피부가 안 좋아지면, 술먹고 필름 끊긴 다음 속을 다 비우고 푹 자기 -_-;;;; 비법을 사용해 보던가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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