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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글] 아이가, 학교에서 크게 다치고 온다면?

LEEHK 2007. 5. 4. 16:06

URL : http://life.ohmynews.com/articleview/article_view.asp?at_code=408368&ar_seq=

 

이 경우, 어떤 것이 정답일까. 나라면 "그래도 보살펴주렴 조심해서" 라고 대답할 것 같아. 하지만 나중에 그 상황이 되어서도 그렇게 대답할 수 있을까?

그랬으면 좋으련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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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학교에서 크게 다치고 온다면?

 추광규(chookk7) 기자

뉴스의 가치를 논하면서, 말하는 우스개 소리중 하나가, 바로 '개가 사람을 물면 뉴스가 안되지만, 사람이 사람을 물면 뉴스가 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내 아이가 사람에게 물려서 온다면 어떤 생각이 들까요?. 결론부터 먼저 말한다면, 마음만 아프고, 다시는 그 사람(?)에게 가까이 가지 말라고 말할 수밖에 없더군요.

어제 오후 초등학교 5학년인 큰 아이한테서 전화가 왔답니다. 오후 3시밖에 안됐는데 집전화 번호가 핸드폰에 찍히니 무슨 일인가 하고 의아해 하면서 받을 수밖에요.

"아빠 크게 다쳤어.. 빨리 와... 엉엉"

전화를 받자마자 들려오는 목소리는 큰 아이였습니다. 엉엉 울면서 자기가 크게 다쳤다고 빨리 집으로 오라는 것입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으면서 어디를 얼마나 다쳤을지 온갖 상상이 순간적으로 머리를 스칩니다. 그래도 얼마나 다쳤는지 다급하게 다시 물어볼 수밖에요.

"무슨 일인데...어디를 얼마나 다쳤냐."
"엉엉.......... 많이 다쳤어... 엉엉"
"알았다. 바로 가마."


사무실이 집 가까이에 있어 바로 차를 몰아 가보니 아이는 1층에 내려와 있습니다. 멀리서 척 보기에 별로 다친 데가 안보여 일단은 안심이 됩니다. 가까이 가서 봐도 다친 곳은 한눈에 안들어옵니다.

▲ 오른쪽 턱 부위를 깨물렸다고 합니다. 치료용 밴드가 붙여져 있어서 그런지 상처는 그리 크게 보이지는 않습니다.
ⓒ 추광규
"어디를 다쳤냐. 팔 부러진 거냐?"
"아니... 여기를 물렸어..."
" ...? 물려 개한테? 집에 오다가 개한테라도 물린 거냐?"
"아니... 친구한테 물렸어.. 엉엉"


이게 무슨 말이랍니까? 개한테 물린 게 아니라, 친구한테 물렸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엉엉 울면서 하는 말이 자기네 반에 자폐아가 있답니다. 그 날 이 친구가 교실 바닥에 누워 있는 것을 모르고 교실에 들어서다가 그 아이한테 걸려서 넘어졌다고 합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바닥에 누워 있는 그 아이와 포개지듯 넘어졌다는 것입니다.

이어 걸려 넘어진 우리 아이를 그 아이가 머리카락을 양손으로 움켜잡더니, 얼굴을 당겨서는 턱 아래부위를 갑자기 꽉 물었다는 것입니다.

"세상에나... !"

그렇게 물리는 바람에 많은 피가 나서, 방금 전 양호실에 가서 응급치료를 받았다고 합니다. 응급치료를 한 뒤, 치료용 밴드까지 붙여져 있어서 그런지, 상처는 크게 보이지 않습니다.

일단은 안심하고, 집 사람에게 전화해 물어보니 속상해 하면서도, 이빨에 물린 상처는 항생제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하기에, 그 길로 아이를 병원으로 데려가 항생제 처방을 받고 돌아 왔답니다.

"그래도 그 친구를 가까이 하면서 돌봐줘야 할가?"

▲ 2주전 쯤에 롤러브레이드를 타다 다친 둘째 아이. 왼쪽 눈 부위 상처가 이제는 거의 나아서 조금 빨갛게만 보입니다.
ⓒ 추광규
불과 2주일 전에는 초등학교 2학년인 둘째 아이가, 롤러브레이드를 타다가 넘어져 왼쪽 눈 위쪽 부위를 크게 다쳐 한동안 치료용 밴드를 붙이고 다녔습니다. 이제 둘째아이의 상처가 거의 낫자마자 첫째 아이가 치료용 밴드를 한동안 붙이고 다녀야 할 판입니다.

어쨌든, 병원치료를 마치고 집에 데려다 주면서, 그제야 안심이 되어 첫째아이와 농담을 주고 받습니다.

"사람한테 물리니까, 기분이 어떻든?"
"별이 번쩍거리고, 아무생각도 안나고...근데 황당한 건 걔는 나를 꽉 물어 놓고도, 자기는 웃고 있더라고."


첫째 아이의 말을 들어보니, 자기 나름대로는, 자폐아인 그 친구를 잘 돌보아 줬다고 합니다. 그 자폐아 친구가 지난 4월 중순, 1박2일로 용인으로 캠프 활동을 갔을 때도, 같은 반 친구들 두 명인가를 어제처럼 물었다고 합니다. 그때 같은 반 친구들이 그 아이를 때리려고 하는 것을 자기가 막아줬었다고 하더군요.

그러면서 저한테 묻는 겁니다.

"아빠, 그래도 그 친구를 가까이 하면서 돌봐줘야 할까?"
"글쎄... 그래도 그렇게 자기 통제가 안되는데 너무 가까이 해서는 안될 것 같은데?"


저녁에는 그 가해학생의 엄마로부터 아내에게 전화가 온 모양입니다. 아내도 속이야 상하지만 그렇게 심한 말을 할 수 없었던 모양입니다. 한동안 통화를 하더니만 "뭐.. 아이들 크다 보면 그럴 수 있지요.....너무 걱정 하지 마세요"라고 말하며 전화를 끊는 겁니다.

아이가 잠든 후 다친 부위를 쳐다보면서, 아내가 가볍게 한숨을 쉽니다. "그래도 턱 부위니까 괞찮을 것도 같은데....."

▲ 지난 4월 여의도 윤중로 벚꽃축제 갔을 때 사진입니다. 해맑게 뛰어노는 것은 좋은데, 사내아이들이라서 장난치는 것도 우악스럽기만 합니다.
ⓒ 추광규
아이들 커가면서, 다치는 것이야 다반사겠지만, 그래도 학교에서 같은 반 친구, 그것도 잘잘못도 가리지 못하는 친구에게 세게 깨물려 상처가 났다는 게 그리 개운치는 않습니다. 자폐증을 가진 아이를 정상인 또래 친구들과 함께 키우는 그 아이 엄마의 마음고생도 이해를 하지만 말입니다. 물론 그 아이의 엄마는 우리부부보다 더 속상할 테지요!.

어제 그런 일을 겪으면서, 장애를 심하게 가진 아이를 키우는 그 아이 부모 마음을 헤아리기는 한다지만, 첫째 아이한테 그 자폐아 친구는 앞으로는 가까이 하지 말라고 주의를 줄 수밖에 없는 게 마음이 그리 편치는 않습니다.

그래도 첫째 아이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어제 상처는 괜찮은지 활짝 웃습니다. 오늘이 학교 운동회 하는 날이라고 수업을 안한다는 것이 신나는 것인지, 어제의 아픈 기억은 이미 과거로 흘러가서 그러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입니다.
이 기사는 데일리포스트(www.dailypost.co.kr)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