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상념의 문서화

나쁜 것만 있지 않다.

LEEHK 2020. 11. 7. 18:10
리퍼 기기가 도착하는데 3일에서 한 달까지 걸린다더니
수리 맡긴 바로 다음날 입고 되었다 연락이 왔다.
점심 즈음 충동적으로 퇴근하고, 패드 수리 지점이 있는
백화점 지하 주차장에서 도시락을 먹었다.


일주일 전부터 재택을 포기하고, 전일 출근 중이다.
국가가 코로나 대응 단계를 개편한 것이나,
회사가 전직원 출근 지침을 단호하게 전달하는 것이나,
가만 보면, 확진자 백 명 전후에서는
모두 일상으로 복귀하라는 의지가 강하게 느껴진다.


재택 가능 항목에 해당되어 재택을 유지할 수도 있었지만,
추울 때 시작해 다시 추운 계절이 돌아온 지금
내 안의 피로도도 상당히 많이 쌓여,
상사에, 동료들에, 재택하겠다 부탁하고 양해 구하고,
집에서도 일 열심히 한다 증명하기 위해 동동거리는 것들이
모두 지겨워서, 하고 싶지가 않았다.



출근은 해도, 마스크 벗는 것은 도저히 타협이 되지 않았다.
그래서 점심은 굶거나, 차에서 혼자 먹고 올라왔다.
마스크를 절대 벗지 않고 종일 끼고 있다보니
수요일 즈음에는 얼굴이 따갑고, 호흡이 막혀 머리가 띵했다.


아무리 조심해도 어떻게든 전파되는 구멍은 있을 수 있고
조심하지 않아도 아무 일 없을 수도 있는데,
코로나 감염은 그저 운이 좋지 않았던 것 뿐일텐데,
자연재해 처럼 사람의 노력과 관계 없는 영역을
나 혼자 붙들고 있는 건가. 이 모든 게 무슨 의미가 있나.


집으로 가는 길, 버스가 무리하게 끼어들었다.
작은 덜컹거림과 사이드 미러 부품이 날라가고
한숨이 나고, 어이가 없어 허탈했다. 진짜 별...


보험 회사 긴급출동 기사님께 모든 처리를 맡기고
공업사에 수리 맡긴 동안 차를 써야 하기에 대차를 받았다.
아무거나 달라하니 이클이 왔고, 주말에 그 차로 시댁에 왔다.
지금 차는 너무 좋은데, 뒷좌석이 좁은 게 유일한 단점이다.
뒷좌석 넓은 차를 타고, 아이들의 반응을 보니
내년에 바꿀 차종에 대한 기준선이 잡히기 시작했다.



사고 몇 시간 뒤, 다음 분기 주차장 당첨 문자를 받았다.
주차장이 탈락하면, 식사 공간이 제일 고민이었다.
추운 겨울, 차에서 도시락 먹고 조심할 수 있게 됐다.
결국 가족에 무슨 일이 오더라도 그것은 운이 나빠서겠지만
확률을 낮추기 위해 내 선에서 할 수 있는 노력은 유지한다.



프로젝트 납기가 빠듯해 지난 2주는 주말에도 일을 한데다
이번 주말에는 달손님때문에 또 못 만나뵙나 걱정이었는데
스트레스 탓인지 주기보다 늦어져, 오늘 시댁에 올 수 있었다.

해가 나고 포근해서, 병원 주변 공원에서 마스크 쓰고
시어머니와 아이들이 만나 산책하고 대화할 수 있었다.
뵙고 손 잡고, 눈 마주치고, 아이들 보여드릴 수 있었다.
3주 만에 뵈었는데, 급속도로 악화되시고 있어 너무 슬프다.


노력해도, 원하는 대로 되지 않는 일들이 많다.
큰 흐름에 내가 끼칠 수 있는 영향은 없는 것 같아
무기력증과 우울감에 들어가기 쉽다.
사건은 의지와 상관 없이 들이닥치고 떠밀려간다.


하지만 그래도, 늘 나쁜 것만 있지 않다.
흘러가면 흘러가는대로. 결과를 바꿀 수 없겠지만,
노력하는 것이 마음 편하기에 그렇게 한다.
자신에게 다정하게 대해주자. 그래도 잘 버텨내고 있다.
중요한 걸 되세기고, 불안해도, 용기를 갖자.